헌법은 보통 국가권력을 조직하고, 권력의 한계를 정하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최고규범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북한 헌법은 그 출발점부터 남한이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헌법과 결이 많이 다릅니다.
북한 헌법을 읽다 보면 국가기관의 설치와 권한 배분을 설명하는 문장 못지않게 최고지도자의 혁명업적, 조선로동당의 영도, 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표현이 전면에 놓여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헌법이 권력을 통제하는 장치라기보다 권력을 정당화하고 체제를 결속하는 정치문서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뜻입니다. 북한 헌법 제11조가 국가의 모든 활동을 조선로동당의 영도 밑에서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1998년 이후 헌법 전문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업적을 전면에 배치한 흐름은 그런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북한 헌법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개정이 법적 안정성의 요구보다 권력 재편의 필요와 밀착해 움직였다는 점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은 북한이 1948년 9월 첫 헌법을 제정한 뒤 2019년 8월까지 15차례 개정했다고 설명합니다. 1972년 사회주의헌법 채택은 김일성 중심의 주석제를 제도화한 분기점이었고, 1992년 개헌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걷어내고 주체를 더 강하게 내세운 전환점이었습니다. 1998년 개헌은 김일성 사후 주석제를 폐지하고 국방위원회 중심 질서를 세워 김정일 시대를 열었으며, 2016년과 2019년 개헌은 국무위원회와 국무위원장 권한을 재설계해 김정은 체제를 국가 차원에서 굳히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북한 헌법 - 서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 조국이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 기치밑에 항일혁명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마련하시고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 군사분야에서 자주독립국가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닦은데 기초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적인 혁명로선을 내놓으시고 여러 단계의 사회혁명과 건설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공화국을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나라로,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국가로 강화발전시키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국가건설과 국가활동의 근본원칙을 밝히시고 가장 우월한 국가사회제도와 정치방식, 사회관리체계와 관리방법을 확립하시였으며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과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한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시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는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위업을 받들어 우리 공화국을 김일성동지의 국가로 강화발전시키시고 민족의 존엄과 국력을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우신 절세의 애국자, 사회주의조선의 수호자이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전면적으로 심화발전시키시고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으로 빛내이시였으며 주체의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시고 순결하게 계승발전시키시여 조선혁명의 명맥을 굳건히 이어놓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세계사회주의체계의 붕괴와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압살공세속에서 선군정치로 김일성동지의 고귀한 유산인 사회주의전취물을 영예롭게 수호하시고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였으며 강성국가건설의 휘황한 대통로를 열어놓으시였다.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여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고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시였으며 숭고한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끄시여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전변시키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다.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는 나라의 통일을 민족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는 공화국을 조국통일의 강유력한 보루로 다지시는 한편 조국통일의 근본원칙과 방도를 제시하시고 조국통일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시여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열어놓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외정책의 기본리념을 밝히시고 그에 기초하여 나라의 대외관계를 확대발전시키시였으며 공화국의 국제적권위를 높이 떨치게 하시였다.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세계정치의 원로로서 자주의 새 시대를 개척하시고 사회주의운동과 쁠럭불가담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세계평화와 인민들사이의 친선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였으며 인류의 자주위업에 불멸의 공헌을 하시였다.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사상리론과 령도예술의 천재이시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였으며 위대한 혁명가, 정치가이시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위대한 사상과 령도업적은 조선혁명의 만년재보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륭성번영을 위한 기본담보이며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태양궁전은 수령영생의 대기념비이며 전체 조선민족의 존엄의 상징이고 영원한 성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를 주체조선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나갈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김정일헌법이다.
여기에 2023년과 2024년, 2025년의 변화까지 더하면 북한 헌법은 더 이상 과거의 통일 담론과 수령 중심 체제만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2023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핵무력 강화 정책이 헌법에 반영되었고, 2024년에는 한국을 적대국가로 규정하는 개헌이 있었으며, 2025년 1월에는 중앙재판소와 중앙검찰소 명칭을 최고재판소와 최고검찰소로 바꾸는 개정이 뒤따랐습니다. 다만 2024년 이후 개정 전문은 외부에 온전히 공개되지 않아, 최근 헌법 변화를 다룰 때에는 공개 조문, 최고인민회의 보도, 한국 정부의 공식 해설 범위를 구분해서 읽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성급한 단정은 분석의 깊이를 오히려 떨어뜨립니다.
북한 헌법의 첫 번째 특징: 헌법 위에 놓인 수령과 당의 권위
북한 헌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국가가 조선로동당의 영도 아래 놓인다는 점을 헌법 자체가 명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에서는 정당이 경쟁의 주체일 뿐 국가를 초월한 지위에 놓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북한에서는 당이 국가 전체를 이끄는 유일한 정치적 중심축으로 규정됩니다. 조문에 적힌 국가기관은 존재하지만, 국가 운영의 실질적 방향은 당과 최고지도자에게서 내려온다는 의미입니다. 권력분립보다 권력집중이 제도 설계의 기초가 되고, 법치보다 혁명성과 충성이 더 높은 위치를 점하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그래서 북한 헌법은 법률적 텍스트인 동시에 정치질서의 서열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수령의 권위를 헌법 언어로 영속화하는 방식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은 1998년 개정헌법을 ‘김일성헌법’, 2012년 개정 이후의 헌법을 ‘김일성-김정일헌법’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합니다. 김일성은 ‘영원한 주석’, 김정일은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상징화되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대중 담론에서 가끔 김정은을 ‘영원한 총비서’로 헌법이 명명했다고 적는 경우가 있지만, 김정은의 총비서 직위 강화는 당규약과 당체계 변화와 결부해 읽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헌법은 2019년 개정 과정에서 국무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영도자라는 점을 전면화했고, 당 직위 강화와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제도 구분을 세밀하게 잡아야 북한 정치의 층위를 올바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북한 헌법의 두 번째 특징: 개정 연혁 자체가 권력승계의 역사
| 시기 | 개정의 핵심 | 정치적 의미 |
|---|---|---|
| 1948년 | 최초 헌법 제정 | 소련식 사회주의 국가 수립의 출발 |
| 1972년 | 사회주의헌법 채택, 주석제 도입 | 김일성 중심 1인 지배체제의 제도화 |
| 1992년 | 마르크스-레닌주의 삭제, 주체 강조 | 독자 노선과 사상국가 정체성 강화 |
| 1998년 | 주석제 폐지, 국방위원회 중심 재편 | 김정일 시대의 선군 체제 법제화 |
| 2016년 | 국방위원회 폐지, 국무위원회 신설 | 김정은식 국가운영 체계 정비 |
| 2019년 | 국무위원장의 국가대표권 명확화 | 김정은의 국가원수 기능 공식화 |
| 2023년 | 핵무력 정책 헌법 반영 | 핵국가 노선의 제도적 고착 |
| 2024~2025년 | 한국 적대국가 규정, 사법기관 명칭 수정 | 통일노선 후퇴와 적대적 국가관계의 강화 |
표에서 보이듯 북한 헌법 개정은 사회 변화에 맞춘 제도 개선이라기보다 최고지도자의 통치방식과 국가전략을 법문으로 굳히는 방식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1972년은 김일성 체제가 헌법 중심에 올라선 해였고, 1998년은 김정일의 군부 장악과 선군정치가 헌법 틀 안으로 편입된 시기였습니다. 2016년은 김정은이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바꾸면서 군사 일변도의 외양에서 국가 전반을 지휘하는 통치기구로 구조를 손질한 시점이었고, 2019년은 대외적으로도 김정은이 국가 대표자라는 점을 분명하게 새긴 해였습니다. 헌법이 권력승계의 흔적을 시간순으로 눌러 담고 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
최근 개정 흐름은 안보와 적대관계 규정으로 무게가 더 옮겨 갔습니다. 2023년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핵보유국으로서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한다는 취지가 헌법에 들어갔습니다. 2024년 1월 김정은은 남북관계를 더 이상 동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보지 않고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했으며, 같은 해 10월 북한 매체는 헌법에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했다고 전했습니다. 2025년 1월에는 사법기관 명칭 정비 개헌이 뒤따랐습니다. 핵과 적대관계, 통치기구 정비가 한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북한 헌법은 체제수호와 국가안보를 앞세운 문서 색채를 더 강하게 띠게 되었습니다.
북한 헌법의 세 번째 특징: 기본권 조항과 현실 사이의 큰 간격
북한 헌법에도 기본권 조항은 존재합니다. 국제헌법자료집에 수록된 북한 헌법에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거주와 여행의 자유, 신체와 주거의 불가침 같은 문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근대국가 헌법이 갖추어야 할 권리 목록이 상당 부분 정리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조문을 곧바로 현실 보장으로 연결하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의 재판기관과 행정기관은 당의 지도를 벗어나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며, 표현과 이동, 정보 접근, 종교 활동 영역은 강한 통제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이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의 다수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권리 선언의 존재와 권리 보장의 실질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북한 사례가 또렷하게 보여 줍니다.
통일부의 2024 북한인권보고서는 정보 통제, 사상·표현·종교의 자유 제한, 이동 및 거주의 자유 제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 등을 별도 항목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2024 국가별 인권보고서도 처형, 강제실종, 자의적 구금, 고문, 집단처벌, 표현과 종교의 자유 제한을 지속적으로 지적합니다. 결국 북한 헌법의 기본권 장은 국가가 주민에게 약속한 자유의 문서라기보다 대외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형식적 장치로 읽힐 여지가 큽니다. 현실에서 권리를 작동시키는 제도적 보장과 사법적 구제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문이 존재해도 시민이 국가를 상대로 권리를 실효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면, 헌법은 삶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헌법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또렷해집니다
대한민국 헌법 -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 비교 항목 | 북한 헌법 | 대한민국 헌법 |
|---|---|---|
| 권력의 출발점 | 조선로동당의 영도와 수령 중심 질서 | 국민주권과 민주공화국 원리 |
| 헌법의 기능 | 체제 정당화와 정치적 동원 | 권력 제한과 기본권 보장 |
| 통일 규정 | 과거 통일 지향 서술 존재, 최근 적대국가 방향 강화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
| 기본권 구조 | 권리 선언은 있으나 실효성 취약 | 존엄, 평등, 적법절차, 사법적 구제 체계 보유 |
| 권력기관 관계 | 당 우위와 최고지도자 중심의 수직 구조 | 국회·정부·법원·헌법재판의 분화 |
대한민국 헌법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합니다.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의 수립과 추진을 국가 목표로 밝히고, 제10조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 제11조는 법 앞의 평등을 규정합니다. 제66조 제3항은 대통령에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부과합니다. 권리와 통치, 통일이 모두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 질서 위에서 서술된다는 뜻입니다. 같은 ‘헌법’이라는 이름을 쓰더라도, 한쪽은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긋고, 다른 한쪽은 체제와 지도자의 정당성을 국가 전체 위에 올려놓습니다. 차이는 문장의 길이보다 헌법의 목적에서 먼저 갈라집니다.
남북한 헌법의 차이를 읽을 때 감정적인 우열 비교에 머무르면 중요한 본질을 놓치기 쉽습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국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며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권리를 침해당한 시민이 어떤 절차로 구제받을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장치를 촘촘히 두고, 권리 침해를 다툴 수 있는 재판과 헌법재판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반대로 북한 헌법은 조선로동당의 영도와 혁명질서 유지가 우선 원리로 놓여 있어 개인의 자유가 국가에 맞서 독자적 기준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헌법 비교는 법문 비교를 넘어 정치체제 비교가 되고,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바라보는 국가철학의 비교가 됩니다.
통일을 둘러싼 북한 헌법의 의미도 다시 읽어야 합니다
북한 헌법을 통일 문제와 연결해 볼 때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북한은 헌법과 공식 담론에서 조국통일을 민족적 과업으로 서술해 왔습니다. 그러나 2024년 들어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고, 같은 해 헌법 개정 과정에서 대한민국을 적대국가로 명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헌법 언어도 큰 전환점에 들어섰습니다. 통일을 앞세우던 문장이 점차 안보와 적대, 국경성과 국가성을 강조하는 문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남북관계를 한민족 내부의 문제로 다루던 틀에서 국가 대 국가의 적대관계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 헌법 차원으로 올라온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통일 관련 조항이 이미 완전히 삭제되었다고 단정하는 태도는 조심해야 합니다. 2026년 2월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이후 개정 전문은 외부에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고, 세부 조문을 둘러싼 해석에도 제한이 남아 있습니다. 학술적 글쓰기에서는 공개된 사실과 추정 영역을 분명히 가르는 편이 신뢰를 높여 줍니다. 현재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북한이 헌법과 정치담론을 통해 통일 지향의 언어를 후퇴시키고, 적대적 국가관계를 제도적으로 굳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변화는 한반도 질서, 대북정책, 평화체제 논의에 상당한 부담을 안기고 있습니다.
북한 헌법은 권리를 보장하는 책이라기보다 체제를 고정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북한 헌법의 특징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면, 수령의 권위를 헌법화하고 조선로동당의 우위를 제도화하며 국가안보와 체제수호 논리를 최고규범의 자리에 올려놓은 문서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1948년 제정 이후 이어진 개정 흐름은 사회 발전에 따른 일반적 헌정 진화라기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 구조의 변화와 밀착해 움직였습니다. 1972년 주석제, 1998년 국방위원회 중심 체제, 2016년 국무위원회, 2019년 국가대표권 정비, 2023년 핵무력 정책 헌법화, 2024년 적대국가 규정은 한 줄로 이어지는 정치사적 흐름입니다. 헌법 조문이 곧바로 국가의 철학과 통치 목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북한 헌법은 북한 정치의 축약판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습니다.
남북한 헌법을 함께 놓고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주권, 인간의 존엄, 평화통일, 평등과 적법절차를 통해 국가권력을 통제하려는 방향으로 짜여 있습니다. 북한 헌법은 당의 영도와 수령의 권위, 체제수호와 군사안보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북한 헌법을 읽는 일은 조문 몇 개를 외우는 작업이 아니라, 한 사회가 권력과 인간, 국가와 통일을 어떤 질서로 배열하는가를 묻는 일과 가깝습니다. 헌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는 질문 앞에서 남북의 답은 매우 다릅니다. 그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은 통일을 이야기할 때도, 북한을 분석할 때도,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할 때도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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