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세계화·국제화·정보화의 속도가 겹겹이 빨라진 시대입니다.
사람, 자본, 지식, 문화가 국경을 넘어 이동하면서 “누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가”라는 질문이 더 이상 철학적 토론에 머물지 않고, 학교·직장·지역사회·행정 현장에서 매일 부딪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행정안전부의 외국인주민 통계에서는 2024년 기준 외국인주민이 258만 명대(전체 인구 대비 약 5% 내외)로 집계되어, 이미 일상적 공존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신호를 줍니다. 또한 법무부 통계에서도 체류외국인 규모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다문화는 특별한 주제가 아니라 생활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합니다.
그런데 공존이 늘 아름답게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청년층은 캠퍼스에서 국제학생과 팀플을 하고, 지역은 외국인 주민을 이웃으로 맞이하지만, 한편으로는 온라인 혐오, 낙인, 고정관념이 쉽게 확산되기도 합니다. 여성가족부의 다문화수용성 조사 결과에서도 일상에서의 접촉과 교류 경험이 수용성을 높이는 경향이 확인되는 반면, 맥락과 집단에 따라 수용성이 크게 갈린다는 점이 함께 드러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공공 홍보물과 사회 전반에서 인종·이주민 혐오차별 표현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점검하며, 차별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교육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육과 정책이 “다문화교육”을 해법으로 제시해 왔습니다.
다문화교육은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다만 오늘의 현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관계의 설계”를 요구합니다. 여기에서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ism)가 등장합니다. 다문화주의가 문화 집단의 ‘인정’과 ‘보호’에 방점을 두었다면, 상호문화주의는 대화·상호작용·공동의 규칙을 중심으로 사회통합을 다시 짜는 관점을 제안합니다.
유럽의 정책 흐름에서 상호문화주의가 ‘도시 단위의 실천’으로 정교화된 사례는 Council of Europe의 Intercultural Cities 프로그램에서 선명하게 확인됩니다. 이 글에서는 다문화주의의 성과를 존중하되 한계를 짚어 보고, 상호문화주의가 왜 교육과 사회정책의 중요한 업그레이드가 되는지,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다양성 역량을 어떤 방식으로 키울 수 있는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용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다문화주의는 다양한 문화 집단의 존재를 인정하고, 소수자 집단의 권리와 정체성을 보호하려는 규범적·정책적 입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캐나다·호주 등 이민국가에서 제도화된 역사적 맥락이 있고, 교육에서는 소수자 학생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편견을 줄이려는 목표로 연결됩니다.
반면 상호문화주의는 “각 문화가 섬처럼 공존하는 상태”를 넘어, 만남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의 작동 규칙을 함께 만들며, 서로의 정체성이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도록 돕는 방식에 초점을 둡니다. 유럽에서 다문화정책의 한계를 성찰하며 상호문화주의가 사회통합의 대안으로 논의되어 온 흐름은 국내 학술논의에서도 확인됩니다.
다문화주의의 한계를 말할 때, 오해가 생기기 쉬운 지점이 있습니다. “다문화주의가 나쁘다”가 핵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문화주의는 인권, 평등, 차별금지라는 가치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문제는 다문화주의가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과정에서, 의도와 다르게 작동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데 있습니다. 그 구조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문화가 ‘고정된 정체성’처럼 다뤄질 때 경계가 두꺼워집니다.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교육 콘텐츠가 “A국 사람은 대체로 이렇다”처럼 문화 집단을 전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면 오히려 편견을 강화할 위험이 생깁니다. 문화는 실제로 한 사람의 삶에서 가족·세대·계층·지역·종교·개인 경험이 뒤섞이며 계속 변합니다. 그런데 교실에서 문화가 ‘박제된 소개 자료’로 전달되면 학생들은 문화 간 차이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소비하거나, 반대로 거리감을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상호문화주의는 문화의 역동성을 전제로 삼고, “다름을 설명하는 교육”보다 “다름을 가지고 함께 과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더 중요한 학습 단위로 봅니다.둘째, ‘도와주는’ 프레임이 관계를 비대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다문화교육은 이주배경 학생을 ‘적응시켜야 할 대상’으로 놓고, 언어·생활규범·학교문화에 빨리 맞추도록 돕는 형태로 설계됩니다. 물론 지원은 꼭 필요합니다. 교육부의 다문화교육 지원계획도 한국어교육(KSL), 맞춤형 지원체계, 교원 연수 강화 등 현실적인 지원을 강조합니다.다만 지원이 “호스트 사회는 변하지 않고, 이주자만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굳어지면, 관계는 쉽게 위계화됩니다. 상호문화주의는 여기서 관점을 바꿉니다. **‘누가 누구를 돕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공동체를 설계한다’**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상호문화주의는 다문화교육의 대상을 소수자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학생과 시민으로 확장합니다.셋째, 공통의 시민 규칙을 다루지 않으면 통합의 언어가 약해집니다.
다문화주의가 문화권의 권리를 강조하는 데 집중할수록 “그럼 우리 사회의 공통 규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빈약해지기도 합니다. 이 질문이 비어 있을 때, 사회는 두 극단으로 흔들립니다. 한쪽에서는 “각자 문화는 알아서 하자”라는 방임으로, 다른 쪽에서는 “다 하나로 맞추자”라는 동화주의로 기웁니다. 상호문화주의는 공통 규칙을 ‘동화’로 만들지 않고, 인권과 존엄이라는 최소 기준을 중심축으로 삼아 서로의 차이를 조정할 수 있게 합니다. UNESCO의 『Guidelines on Intercultural Education』도 교육이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인권 원칙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합니다.여기서 잠깐, “상호문화주의가 다문화주의보다 더 좋은가요?”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경쟁 관계라기보다 업데이트 관계에 가깝습니다. 다문화주의가 권리와 인정의 언어를 넓혀 줬다면, 상호문화주의는 그 토대 위에서 관계와 상호작용의 기술을 발전시킵니다. Council of Europe의 Intercultural Cities가 도시 정책에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다양성의 존재’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다양성이 사회적 신뢰와 공동의 번영으로 이어지도록 정책과 교육을 설계하자는 제안입니다.
그럼 상호문화주의는 교육에서 무엇을 달라지게 만들까요? 핵심은 “지식 전달형 다문화교육”에서 “관계 경험형 상호문화교육”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문화다양성 역량(Intercultural / Cultural Diversity Competence)**을 조금 더 구조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다양성 역량은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과 ‘효과적이면서도 적절한’ 소통과 협력을 수행하는 능력입니다. 이 개념을 국제교육 분야에서 널리 정교화한 연구 중 하나가 Deardorff(2006)입니다. Deardorff는 상호문화 역량을 태도(존중, 개방성), 지식·이해(문화적 자기인식, 타문화 이해), 기술(경청, 관찰, 해석, 관계맺기)이 서로 맞물려 내적·외적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 모델로 설명합니다. OECD PISA 2018의 ‘글로벌 역량’ 또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타자와 존중의 관계를 형성하며 공동의 문제를 다루는 능력을 중요한 교육성과로 다룹니다.
여기서 “역량”이라는 단어가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 상호문화주의 관점에서 역량을 세 층위로 번역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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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인식의 층위: “나는 어떤 렌즈로 세상을 보는가”
문화는 ‘남의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모두 특정 문화의 규범 속에서 말하고 판단합니다. 자기인식이 없으면,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규범을 상대에게 강요하게 됩니다. 자기인식은 죄책감이 아니라 정확한 자기 이해입니다.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떤 농담에 민감한지, 갈등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 점검하는 습관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
타인인식의 층위: “상대의 렌즈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타인인식은 ‘친절’만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언어, 가족 구조, 종교 규범, 소통 방식, 학교 경험, 이주 과정의 스트레스, 차별 경험까지 고려할 때 비로소 현실적인 이해가 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종차별 실태와 법제화 논의에서 강조한 것처럼, 차별은 개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관행과도 연결됩니다. -
소통·협력의 층위: “차이를 가진 채로 함께 성과를 내는가”
상호문화주의가 다문화주의와 가장 크게 갈리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목표는 ‘좋은 감정’이 아니라 함께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입니다. 팀플, 동아리, 마을 프로젝트, 학교 축제 준비 같은 구체적 협업 상황에서 역할을 나누고, 충돌을 조정하고, 공동의 기준을 합의하는 과정이 역량의 핵심 훈련장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사회심리학의 중요한 단서가 등장합니다. 집단 간 접촉이 편견을 줄인다는 ‘접촉 가설’은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고, Allport가 제시한 최적 조건(동등한 지위, 공동 목표, 협력, 제도적 지지)이 특히 중요하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Pettigrew & Tropp(2006)의 메타분석도 접촉이 다양한 형태의 편견을 줄이는 경향을 확인하며, 접촉의 조건과 경로를 더 정교하게 검토합니다. 한국의 다문화수용성 조사에서도 “교육”보다 “교류·활동 경험”이 수용성 형성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정책적 시사점이 제시됩니다.
이 내용을 교육 설계 언어로 바꾸면, “강의형 다문화이해 수업”만으로는 부족하고, 동등한 협력 경험을 만들도록 커리큘럼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를 아주 간단한 모형으로 표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ext{사회적 신뢰(Trust)} = \alpha(\text{질 높은 접촉}) + \beta(\text{공정한 규칙}) + \gamma(\text{권리 보장}) - \delta(\text{낙인·혐오})
\]
여기서 ‘질 높은 접촉’은 우연히 마주치는 빈도만이 아니라, 동등한 역할을 가진 협력, 안전한 대화 규칙, 갈등 조정의 경험까지 포함합니다. ‘공정한 규칙’은 학교·직장에서 차별을 막는 절차(상담, 신고, 조정)와 연결되고, ‘권리 보장’은 인권교육과 제도 설계의 영역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교실과 학교에서 상호문화주의는 무엇으로 구현될까요? 교육부 및 다문화교육 정책 안내 자료에서도 학교 교육과정 전반에서 다문화교육을 연계하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감수성을 높이도록 권고하는 흐름이 확인됩니다. 여기에 상호문화주의 관점을 더하면, 다음과 같은 실천 설계가 유효합니다.
(1) “문화 소개”를 “공동 과제”로 바꾸는 수업 설계
예를 들어 ‘각 나라 명절 소개 발표’는 흥미롭지만, 발표가 끝나면 관계는 깊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지역사회 문제(쓰레기 분리배출, 학교 안전, 교내 혐오표현 줄이기, 교통약자 배려)를 주제로 팀을 구성해 다양한 배경의 학생이 함께 해결안을 만들게 해 보십시오. 역할 분담을 동등하게 설계하면 접촉의 질이 달라집니다.(2) 대화의 기술을 ‘규칙’으로 가르치기
상호문화주의는 “서로 존중하자” 같은 선언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수업 초반에 **대화 규칙(경청, 확인 질문, 비난 대신 경험 진술, 차별적 언어 중단 신호)**을 함께 정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규칙을 실제로 사용하게 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학생은 문화 차이를 ‘예민한 주제’로 피하지 않고, 조정 가능한 문제로 다루게 됩니다.(3) 언어 지원을 ‘동화’가 아니라 ‘참여’로 설계하기
한국어교육(KSL)은 학습권 보장의 핵심입니다. 다만 목표를 “빨리 한국 학생처럼 말하기”로 두면 실패 경험이 누적될 수 있습니다. 목표를 “수업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 도구 확보”로 재정의하면, 학생은 언어를 ‘정체성 평가’가 아니라 ‘참여 기술’로 경험하게 됩니다.(4) 혐오·차별을 ‘개인 인성’이 아니라 ‘학습 가능한 사회 문제’로 다루기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공 홍보물에서의 혐오차별 표현을 점검한 이유는, 혐오가 개인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표현과 제도 속에서 재생산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이 점을 교육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혐오표현의 구조(대상화, 일반화, 비인간화)를 사례로 분석하고, 피해자-목격자-가해자 역할을 바꾸어 토론해 보게 하면 학생의 시민 역량이 자랍니다.학교 밖에서는 어떨까요? 상호문화주의는 특히 도시·지역 단위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Council of Europe의 Intercultural Cities가 도시정책에서 강조하는 것도 ‘거주’와 ‘노동’에 더해 참여와 만남의 장을 디자인하는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주민 증가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일부 지자체는 전담 조직을 두고 지원과 조정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또 최근 보도에서는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통합 모델이 ‘이주민 중심의 적응’에 치우치지 않도록, 호스트 사회의 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집니다.
여기까지 오면 “상호문화주의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어렵지 않나요?”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현실의 어려움을 인정하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다만 어려움은 방향을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설계를 더 정교하게 하라는 신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문화수용성 조사에서도 접촉과 교류가 수용성을 높인다는 결과가 확인되며, 정책이 ‘칸막이를 넘어 교류·협력 경험을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문화주의와 상호문화주의를 비교하는 핵심을 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 구분 | 다문화주의 | 상호문화주의 |
|---|---|---|
| 핵심 목표 | 차이의 인정, 권리 보장 | 대화·상호작용, 공동체 통합 |
| 정책/교육 초점 | 소수자 보호와 지원 설계 | 모든 시민의 관계 역량 강화 |
| 위험 요인 | 문화 고정화, 집단 경계 강화 | 대화 규칙 부재 시 형식화 위험 |
| 실천 단위 | 권리·서비스 중심 프로그램 | 학교·도시의 만남 구조 설계 |
| 핵심 역량 | 수용성, 차별 민감성 | 자기인식·타인인식·협력 소통 |
이 표가 말해 주는 핵심은 하나입니다. 다문화주의가 만든 ‘권리의 기반’ 위에서, 상호문화주의는 ‘관계의 기술’을 추가로 구축합니다. 그리고 그 기술의 이름이 문화다양성 역량입니다. Deardorff의 과정 모델이 보여주듯, 태도·지식·기술이 맞물릴 때에만 ‘적절하고 효과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해집니다.

한국 사회는 이미 다문화적 현실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주민이 258만
명대에 이르고, 체류외국인 규모도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다문화 사회가 올까”가
아니라 “다문화 사회를 어떻게 운영할까”가 더 정확한 질문이 됩니다. 이 질문 앞에서 다문화주의는 중요한 토대를 제공해 왔습니다. 차별을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교육·언어·복지·권리의 언어를 확장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는
문화가 고정된 틀로 소개되거나, ‘도와주는’ 프레임이 관계를 비대칭으로 만들거나,
공통의 시민 규칙을 충분히 다루지 못해 통합의 언어가 약해지는 장면도
반복됩니다.
그래서 상호문화주의가 필요합니다. 상호문화주의는 문화다양성을 ‘견뎌야 하는 부담’으로 보지 않고, 교육과 사회의 혁신 자원으로 재구성합니다. 동시에 인권과 존엄이라는 최소 기준을 중심에 두고, 대화와 상호작용의 구조를 설계합니다. UNESCO가 제시한 상호문화교육의 원칙도 문화 존중과 인권 기준의 결합을 강조합니다. Council of Europe의 도시 정책 사례는 다양성이 신뢰와 결속으로 이어지려면 ‘만남의 장’이 계획되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상호문화주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실천 언어가 문화다양성 역량입니다. 자기인식, 타인인식, 소통·협력의 역량이 함께 자랄 때, 우리는 차이를 갈등의 불씨로 두지 않고 공동의 과제 해결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접촉이 편견을 줄인다는 연구가 말하듯, 중요한 것은 접촉의 빈도보다 접촉의 질이며, 동등한 협력·공동 목표·제도적 지지 같은 조건이 갖춰질수록 변화는 더 안정적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국내 조사에서도 교류 경험이 수용성을 높이는 경향이 확인된 만큼, 교육과 정책은 ‘활동 기반의 만남’을 더 촘촘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무리로 한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다문화 사회의 성패는 “다른 문화를 얼마나 많이 소개했는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규칙 아래에서 서로의 존엄을 지키며 함께 성과를 내는 경험’을 얼마나 축적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의 학생이 내일의 직장인이 되고 시민이 됩니다. 학교에서의 상호문화교육은 미래 사회의 운영 능력을 키우는 일이며, 그 출발점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대화 규칙을 만들고, 함께 과제를 해결하며, 갈등을 조정하는 경험”을 수업과 생활 속에 심는 일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와 혐오표현이 왜 확산되는지, 그리고 정책·교육·미디어 리터러시가 이를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지를 사회심리학(낙인, 위협 인식)과 행정학(거버넌스, 제도 설계) 관점으로 연결해 보겠습니다. 계속 함께 가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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