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 《선비와 도둑》은 가난하지만 올곧게 살아가려는 박 선비 부부와, 남의 것을 훔치며 살던 천 서방이 한밤중에 엮이며 시작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벌을 내리거나 억지로 교훈을 밀어 넣지 않아도 이야기가 스스로 답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누군가의 선행은 그날 바로 보답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선행은 “세상에는 아직 믿을 만한 마음이 있다”는 증거가 되어,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지요. 오늘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전래동화 : 선비와 도둑
옛날 옛적, 어느 고을에 박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박 선비는 가난했습니다. 아주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반듯했고, 말은 정직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지요.
그런데 가난이 너무 깊으니, 혼처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착한 건 알겠는데… 살림이 걱정이지.”
사람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박 선비는 오랫동안 혼자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어른 김 진사가 소문을 들었습니다.
“박 선비가 글공부도 열심히 하고, 인품이 참 좋다더라.”
김 진사는 딸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아도, 사람 마음이 넉넉하면 함께 살 수 있지 않겠느냐.”
김 진사의 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버지, 제가 가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초가집 마루는 작았지만, 둘의 마음은 따뜻했지요.
그런데 같은 마을에 천 서방이 살고 있었습니다.
천 서방은 남의 물건을 슬쩍하는 데에 손재주가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보면 문단속부터 다시 했지요.
어느 날 천 서방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김 진사 댁 딸이 시집가며 패물과 돈을 꽤 가져갔다더라.”
천 서방의 눈이 번쩍했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밤, 한 번 가 볼까.”
밤이 깊었습니다.
바람이 문풍지를 살살 흔들었습니다.
천 서방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박 선비 집 담장을 넘었습니다.
발끝으로 흙을 누르며 살금살금 들어갔지요.
방 안은 어두웠습니다.
천 서방은 손을 더듬어 이곳저곳을 살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이불 속에서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도둑 양반… 어찌 남의 첫날밤을 어지럽히러 오셨습니까?”
천 서방은 깜짝 놀라 굳어 버렸습니다.
불이 켜진 것도 아닌데, 목소리는 또렷했지요.
김씨 부인은 겁에 질려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분히 이어 말했습니다.
“당신도 사정이 있어 여기까지 왔겠지요.
빈손으로 돌아가면 집안 식구가 속이 쓰릴지도 모릅니다.
제가 가져온 것 가운데 조금을 드리겠습니다. 가져가세요.”
천 서방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나를 꾸짖기보다… 나눠 준다고?”
손이 떨렸습니다. 마음도 떨렸습니다.
그는 조심스레 돈주머니를 받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날 밤, 달빛이 유난히 밝았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박 선비는 밤낮으로 공부를 놓지 않다가, 몸이 크게 약해졌습니다.
기침이 잦아지고, 기운이 쭉 빠졌지요.
김씨 부인은 약을 달이고 물을 길어오며 남편을 돌봤습니다.
하지만 살림은 점점 더 팍팍해졌습니다.
시집올 때 가져온 돈과 패물도 어느새 바닥을 보였습니다.
초가집 안에는 조용한 한숨만 늘어갔습니다.
그 무렵, 천 서방은 어느 밤 문득 옛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나에게 돈을 내어 준 그 부부는 요즘 어떻게 지낼까.”
그는 마음이 이상해져, 박 선비 집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창문 틈으로 보니, 박 선비는 이불에 누워 있었고,
김씨 부인은 마른 손으로 이마를 짚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천 서방의 가슴이 콕 하고 아렸습니다.
“내가… 그 집을 더 어렵게 만든 건 아닐까.”
그날 밤, 천 서방은 자신이 모아 둔 돈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절반을 자루에 담았습니다.
“늦었지만… 이건 돌려 드려야지.”
그는 조용히 박 선비 집 대문 안쪽에 돈자루를 두었습니다.
자루 위에는 작은 쪽지를 올려두었지요.
‘힘내십시오.’
다음 날 아침, 김씨 부인이 문을 열다가 돈자루를 발견했습니다.
“여보, 이게 무엇일까요?”
박 선비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자루를 보았습니다.
자루는 무겁고, 돈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박 선비의 얼굴은 기쁨보다 걱정이 먼저 지나갔습니다.
“주인이 없는 돈은 받을 수 없소.”
그는 종이에 또박또박 글을 써서 문 앞에 붙였습니다.
‘이 돈의 주인을 찾습니다. 잃어버린 분은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천 서방은 멀찍이서 그 글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눈가가 찡해졌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속이며 살아왔구나.”
천 서방은 한참을 서 있다가,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남의 것을 빼앗지 않겠다.
내 손으로, 내 땀으로 살겠다.”
그날 이후 천 서방은 밤길 대신 아침길을 택했고,
마을 사람들도 조금씩 그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답니다.
등장인물 분석
| 인물 | 핵심 재주/능력 | 성격과 상징 | 이야기에서의 기능 | 독자에게 남기는 메시지 |
|---|---|---|---|---|
| 박 선비 | 학문에 대한 성실함, 정직한 판단 | 올곧음, 공정함의 상징 | “받아도 되는가”를 끝까지 묻는 기준점 | 상황이 어려워도 원칙을 지키는 힘 |
| 김씨 부인 | 침착한 대처, 타인을 보는 눈 | 용기, 연대, 실천하는 선의 상징 | 갈등을 폭발시키지 않고 방향을 바꾸는 인물 | 선행은 소리보다 태도에서 나온다는 점 |
| 천 서방 | 손재주, 기민함(원래는 도둑질에 쓰임) | 흔들리는 인간, 변화 가능성의 상징 | 악의 출발점이자 변화의 증거 | 사람은 어느 순간에도 돌아설 수 있음 |
| 김 진사 | 선택을 돕는 판단, 어른의 책임 | 가치 중심의 안목 | 결혼의 출발을 만들어 주는 촉매 | 겉형편보다 사람됨을 보는 기준 |
감상포인트
김씨 부인의 ‘조용한 용기’가 이야기의 방향을 바꿉니다. 소리치지 않고도, 사람을 멈춰 세울 수 있지요.
천 서방의 마음이 움직인 순간은 “혼나는 두려움”이 아니라 “존중받는 낯섦”에서 시작됩니다.
박 선비의 정직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공동체의 신뢰를 지키는 가장 큰 자산으로 드러납니다.
나눔의 의미가 ‘베풂’에서 ‘되돌림’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한 번 건넨 마음이 다시 돌아와 누군가를 살립니다.
재능의 윤리도 보입니다. 천 서방의 손재주가 남을 해치는 쪽으로 쓰일 때는 불행을 만들고, 삶을 세우는 쪽으로 쓰일 때는 새 출발이 됩니다.
이야기의 핵심
핵심 명제 1: 정직은 사람과 관계를 지키는 마지막 울타리입니다.
핵심 명제 2: 선행은 상대를 ‘낙인’이 아닌 ‘가능성’으로 볼 때 더 깊게 작동합니다.
현대적으로 보면, 이 이야기는 “처벌 vs 교화”의 갈림길에서 한 가지 장면을 제시합니다. 김씨 부인은 천 서방을 단죄하기보다, 그가 사람답게 돌아올 통로를 남겨 둡니다. 동시에 박 선비는 뜻밖의 돈 앞에서도 기준을 흐리지 않습니다. 공정은 감정이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조용히 보여 줍니다.
교훈과 메시지
남의 마음을 바꾸는 힘은 ‘호통’보다 ‘존중과 절제’에서 나올 때가 있습니다.
가난과 궁핍이 곧 마음의 가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세운 기준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한 번의 선택으로도 방향을 틀 수 있습니다. 과거가 오늘의 다짐을 막지는 못합니다.
진짜 부유함은 신뢰를 남기는 삶에서 자랍니다. 돈은 줄어도, 믿음은 쌓일 수 있습니다.
《선비와 도둑》은 “착한 사람은 늘 손해 본다”는 말에 조용히 반박합니다. 손해처럼 보이는 정직이 누군가를 되돌리고, 한 번의 따뜻한 선택이 또 다른 선택을 낳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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