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은 위로가 아니라, 현실을 다시 보는 각성의 자세일 때가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원터’라는 농촌이지만, 사실은 근대화와 식민지 자본주의가 동시에 밀려오던 틈이다. 봉건의 잔재가 남아 있는 자리로, ‘새 제도’가 들어오고, 그 제도가 다시 사람을 가르는 자리로. 그 틈에서 누군가는 돌아오고, 누군가는 떠나며, 누군가는 남는다.
나는 이 작품의 뿌리를 “가난의 묘사”가 아니라 “가난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에게 빚지고, 누가 누구를 대신해 말하고, 누가 누구의 침묵을 이용하는지. ‘고향’이라는 단어가 따뜻해지기 전에, 소설은 먼저 차갑게 물어본다. 우리는 정말 ‘돌아갈 곳’을 갖고 있는가?
책 소개
이기영의 장편소설 『고향』은 1933년 말부터 1934년 9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작품으로 정리된다. 다만 연재 시작일은 자료마다 11/15와 11/27로 엇갈려, “1933년 11월”로 묶어 말하는 편이 안전하다.단행본 초판은 1930년대 중반 한성도서주식회사 계열 판본으로 이어지며, 소장 자료에는 1935년 초판·1936년 재판 같은 표기도 확인된다.
오늘 우리가 가장 쉽게 구하는 판본 중 하나는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판으로, 38장 구성(‘농촌 점경’~‘먼동이 틀 때’)을 뼈대로 둔다.
작품은 1920년대 중반 충청도 농촌 ‘원터’를 무대로, 귀향한 청년 김희준을 중심에 두고 소작농의 삶, 마름과의 대립, 농민운동의 조직화 과정을 장편 서사로 밀어붙인다.
문학사적으로는 카프 계열 리얼리즘/경향소설의 핵심작으로 자주 호명되며, 동시에 “도식성” 논의도 함께 따라붙는다.
‘핵심 한 문장’
“이기영의 『고향』은 일제 시대에 산출된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문장이 남는 이유는, ‘최고’라는 평가 때문이라기보다 리얼리즘이 무엇을 감당하는지를 이 소설이 끝까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리얼리즘은 “불쌍한 사람을 잘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불쌍해지는 구조를 끈질기게 드러내는 태도에 가깝다.
희준은 선한 주인공으로만 남지 않고, 마을은 피해자의 집합으로만 남지 않는다. 서로를 필요로 하다가도, 하루치 식량 앞에서 서로를 밀어내는 관계까지 소설은 넣어둔다. 그래서 읽고 나면 따뜻함보다 먼저 남는 감정은 종종 불편함이다. 그 불편함이 이 작품을 ‘고전’으로만 박제시키지 않고, 지금의 문장으로 다시 불러낸다.
핵심 내용
원터는 전형적인 농촌이지만, 동시에 읍내와 연결된 “근대의 영향권”이다. 봉건적 위계(마름-소작) 위에 식민지의 경제 질서가 덧씌워지며, 사람들은 더 자주 가난해지고 더 빨리 흩어진다.이야기는 동경 유학 중이던 김희준이 학비난으로 귀향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그는 소작을 짓는 동시에 계몽·조직 활동을 하며, 마을의 소작인들이 마름 안승학과 맞서는 국면을 만든다.
중요한 건 ‘대립 구도’만이 아니라, 그 대립을 둘러싼 생활의 디테일이다. 춘궁과 농번기, 풍년과 궁핍이 리듬처럼 교차하면서, 투쟁은 언제나 “정의”가 아니라 “당장 오늘의 밥”과 부딪힌다.
또 하나의 축은 안승학의 딸 갑숙이다. 그는 희준과 가까워지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관계(경호 등)와도 얽히며 농촌-읍내-공장으로 이어지는 이동의 서사를 만든다.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는 길이 사실은 구조가 밀어 넣는 길임을 소설은 보여준다.
이 작품의 논쟁점 중 하나로는, 연재 말미 일부가 이기영의 구속으로 인해 김기진이 대신 집필했다는 회고가 전해진다는 점이 있다. “작가성이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이 텍스트 내부의 균열(서술의 결, 전개의 속도)과 함께 다시 읽히는 이유다.
동시에 『고향』은 “농민이 주체가 되는 각성”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농민과 노동의 연대 가능성을 서사의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어떤 독자에게는 숨 막힐 만큼 직선적인 설계로, 또 어떤 독자에게는 그 직선 덕분에 시대의 압력을 또렷하게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남는다.
결국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고향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고향을 새로 정의하는 싸움이다. 돌아온다는 말은 쉽지만, 돌아온 뒤에 무엇을 바꿀지는 어렵다. 그 어려움이 38장의 길이를 만들어낸다.
고향이 붙잡는 관점
“귀향한 희준은 … 농민지도자로서 위치를 굳힌다.”
귀향은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다. ‘돌아옴’이 개인사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의 질문으로 확장될 때, 희준은 주인공이 아니라 촉매가 된다.“소작료를 두고 … 소작쟁의가 벌어진다.”
싸움의 명분은 크지만, 촉발점은 늘 구체적이다. 숫자 하나(소작료)로 관계의 서열이 드러나고, 공동체의 연대가 시험대에 오른다.“평가와 학술 연구가 끊이지… 최정본”
이 작품은 내용만큼이나 “텍스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연재본-단행본-검열-대필 논의가 겹치면서, 읽기는 자연히 “문학사 속 읽기”가 된다.“마지막 35·36회분은 … 김기진이 대신”
‘작가’라는 이름이 흔들리는 지점이 오히려 텍스트를 더 생생하게 만든다. 누가 썼는가를 따지는 순간, 우리는 왜 그 부분이 달리 읽히는지까지 보게 된다.“사회주의 리얼리즘… 도식성/작위성 비판”
『고향』은 설득하려는 소설이다. 그래서 어떤 장면은 ‘살아 있음’보다 ‘주장’이 먼저 느껴지기도 한다. 그 긴장 자체가 이 작품의 성격이다.
이 소설이 ‘작동’하는 방식
『고향』의 문장 호흡은 “서정”보다 “관찰” 쪽에 기대어 있다. 단정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장면을 쌓아 올려 현실이 스스로 결론을 말하게 하는 방식이 자주 보인다. ‘농촌 점경’에서 시작해 ‘춘궁’과 ‘풍년’을 지나 ‘먼동’으로 가는 구성이, 삶의 계절을 그대로 서사의 엔진으로 삼는다.목소리는 대체로 인물에게 너무 가까이 붙지 않는다. 그 거리 덕분에 마을은 미화되지 않고, 희준도 영웅으로 박제되지 않는다. 대신 “왜 연대가 흔들리는지” 같은 불편한 이유들이 남는다—먹을 것이 떨어질 때, 돈이 막힐 때, 사람은 가장 먼저 서로를 의심한다는 식으로.
구성 전환은 ‘사례→긴장→타협/파열’의 반복으로 진행된다. 청년회, 두레, 공장 노동 같은 장면들이 교대로 배치되며 농촌 내부의 문제를 농촌 바깥(도시·산업)과 연결한다. 이 반복 장치는 ‘고향’이라는 말이 단순한 공간명이 아니라 경제와 권력의 배치도임을 축적해 간다.
그리고 텍스트의 바깥에서 벌어진 사건—연재 말미 대필 회고—는 작품 내부의 균열 읽기를 부추긴다. 어떤 장에서 감정의 결이 달라 보인다면, 우리는 ‘문학적 의도’뿐 아니라 ‘역사적 조건’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지금, 우리의 ‘고향’은 어디로 밀려나는가
우리는 종종 “지방 소멸”을 숫자로 말한다. 하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건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사라지는 순서다. 먼저 청년이 떠나고, 다음엔 노동이 떠나고, 마지막엔 말이 떠난다.희준이 귀향해 마주하는 건 낭만이 아니라 계약과 빚이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플랫폼 노동의 수수료, 월세의 인상, 대출의 이자 같은 것들이다. 그 앞에서 “각성”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서로에게 정보를 나누는 방식부터 시작될지 모른다.
또 하나는 ‘계몽’의 불편함이다. 소설 속 지식인은 선의로 움직이지만, 그 선의가 자칫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순간 공동체는 다시 줄을 선다. 우리는 “좋은 의도였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면죄부로 쓰곤 한다.
그리고 연대. 연대는 늘 멋있지만,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먹을 게 떨어지고 돈이 막히면, 사람은 “각자도생”을 가장 먼저 꺼내 든다. 『고향』은 그 비겁함을 꾸짖기보다 그 비겁함이 생기는 구조를 먼저 보여준다.
이 작품이 오래 남는 건, ‘정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정답을 말하는 습관’을 경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누가 나쁜가”를 묻기 전에 “왜 이렇게 되는가”를 묻는 쪽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뜨겁기보다 서늘하다. 우리가 ‘살 곳’을 말할 때, 그 말 속에는 누가 빠져 있는가?
인사이트
고향을 감상하기보다, 고향을 구성하는 계약(소작·임대·수수료)을 먼저 볼 수 있다.
선의의 ‘계몽’이 위계를 만들 수 있음을 기억하며, 말의 방향(위→아래 / 옆→옆)을 점검해볼 만하다.
연대가 무너질 때를 ‘의지 부족’으로만 보지 않고, 결핍의 조건을 함께 분석해볼 수 있다.
개인의 비극을 “개인 탓”으로 닫지 않도록, 이동(농촌→도시→공장)의 구조를 읽어볼 수 있다.
정의로운 구호가 현실에서 작동하려면, 작은 제도(회의, 기록, 공유)가 필요함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 동네/우리 회사/우리 팀”의 문제를 말할 때, 누가 말할 권한을 갖는지를 먼저 살펴볼 수 있다.
고전 읽기를 ‘줄거리 암기’가 아니라,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는 훈련으로 삼아볼 만하다.
텍스트 바깥의 사건(검열, 연재, 대필 논의)을 함께 보면, 문학을 역사적 문서처럼 읽는 눈이 생길 수 있다.
눈에 들어온 문장들
“땀 흘리는 몸과 부채질하는 몸의 거리가 곧 질서가 된다.”
“가난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규칙이다.”
“돌아온 사람은 ‘희망’이 아니라 ‘불편한 기준’이 된다.”
“연대는 구호로 시작하지만, 유지비는 밥상에서 나온다.”
“딸의 이동은 사랑이 아니라 시대의 통로다.”
“어떤 장에서는 문장이 아니라 시대가 서둘러 끝맺는다.”
저자 소개
1924년 『개벽』 공모에 「오빠의 비밀편지」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25년 카프(KAPF)에 가담해 경향문학의 대표 작가로 자리 잡았다.
1931년 카프 1차 검거로 구속·석방을 겪는 등 식민지 권력의 탄압 속에서 활동했으며, 『고향』 연재와 관련해 구속 및 집필 조건이 거론되기도 한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 창립에 관여했고, 이후 월북해 북한에서 작품 활동과 공적 역할을 이어간 것으로 정리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농촌 현실을 무대로 하되, “현실의 모순을 어떻게 읽고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오래 붙어 있는 편이다.
『고향』이 지금까지도 계속 읽히는 이유는, 한 시대의 참상을 고발해서만이 아니라, 그 참상이 사람들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장편의 호흡으로 끝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