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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그림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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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고도를 기다리며』: “가자”라고 말하고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고도를 기다리며』 리뷰: ‘가자’라 말하고도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 반복과 침묵이 오늘의 기다림을 비춘다.
기다림이 우리를 살리는지, 우리를 멈추게 하는지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얇은 종이에서 나는 약간의 먼지 냄새가 먼저 닿았다. 책장 한쪽, 여러 번 꺼냈다 넣은 흔적이 있는 세계문학전집 사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는 늘 “얇은데 무거운” 쪽에 있었다. 오래전에 제목만 알고 지나쳤고, 언젠가 공연 포스터에서 두 남자가 나무 옆에 서 있는 이미지로 다시 만났고, 결국엔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필요해진 시기에 책을 꺼냈다. 이 작품은 줄거리로 요약하면 너무 간단해져서, 오히려 읽는 동안엔 줄거리 밖에서 자꾸 일이 벌어진다. 말이 앞으로 나가려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결심은 선언처럼 들리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읽는 동안 내 마음도 이상하게 한 발 늦게 따라간다.
이 책의 뿌리는 전후의 황폐함이 아니라, 그 황폐함 속에서도 계속 말을 걸어야 하는 인간의 습관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접으려다가도, 다음 페이지에 또 같은 자리로 돌아와 있는 느낌이 묘하게 편안하다. 한편으론 웃기고, 한편으론 속이 서늘하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아니, 기다림 자체가 이미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3) 책 소개

『고도를 기다리며』(원제 En attendant Godot)는 사뮈엘 베케트가 프랑스어로 쓴 희곡으로, 1952년 파리의 레 제디시옹 드 미뉘(Les Éditions de Minuit)에서 출간된 것으로 널리 정리되어 있다. 
초연은 1953년 1월 5일, 파리 테아트르 드 바빌론(Théâtre de Babylone)에서 이루어졌고(연출/초연 관련 정보는 권리사·공연사 기록과 함께 반복 확인된다), 이후 전후 연극의 방향을 바꾼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 번역본은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예를 들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판(오증자 옮김, 2000년 출간 표기)과 최근 개정판으로 소개되는 문예출판사 판(홍복유 옮김, 2024년 표기)처럼 서지 정보·해설 구성이 서로 다르다. 
내용은 단순하다. 두 남자(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가 어떤 ‘고도’를 기다리고, 그 기다림 사이로 포조와 럭키, 그리고 소년이 드나들며, ‘내일’이라는 약속이 매번 미뤄진다—그 단순함이 오히려 끝없는 해석을 부른다. 
형식은 2막(두 번의 거의 같은 하루)이고, 이 반복이 작품의 심장처럼 뛰고 있다. 


4) ‘핵심 한 문장’

“블라디미르 : 자, 갈까?
에스트라공 : 그래, 가자.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짧은 대사와 지문은 『고도를 기다리며』가 작동하는 방식을 거의 전부 보여준다. 의지(가자)현실(움직이지 않음) 사이의 틈이, 이 작품의 코미디이자 공포다. 말은 결심처럼 들리는데 몸은 남아 있고, 둘은 그 틈을 메우기 위해 다시 말을 한다. 그 결과 ‘기다림’은 단순한 수동이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언어로 관리하는 기술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 장면을 보며 슬쩍 떠올린다. 나도 “가자”라고 말해놓고, 사실은 움직이지 않았던 날들을.


5) 핵심 내용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보다 “왜 아무 일도 결정적으로 일어나지 않는가”를 보여준다. 등장인물은 어떤 장소(나무가 있는 길가)에 머물고, 어떤 약속(고도가 온다)을 붙잡는다. 그런데 그 약속은 매번 “내일”로 밀린다. 

여기서 기다림은 희망의 이름이기도 하고, 동시에 책임을 유예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기다린다는 말은 스스로를 설득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오늘만 버티면.” 이런 문장이 삶을 살게도 하지만, 삶을 멈추게도 한다. 작품은 그 양가성을 굳이 정리해 주지 않고, 그대로 반복한다.

둘이 주고받는 대화는 때때로 만담처럼 웃기지만, 웃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는 건 이상한 공허다. 말장난과 오해와 되풀이가 이어지는데, 그게 ‘시간을 때우는 방식’인 동시에 ‘서로를 붙들어 두는 방식’이라서 그렇다. 누군가 옆에 있어야 기다림이 버티어지니까.

포조와 럭키의 등장은 또 다른 긴장을 만든다. 두 사람은 관계의 권력과 종속을 한눈에 드러내는 쌍으로 읽힐 수 있고, 실제로 현대 연출에서는 그 이미지가 더 날카롭게 쓰이기도 한다(특히 럭키의 몸과 목소리). 

그리고 가장 유명한 질문. 고도는 누구인가? 베케트는 이 질문을 단정적으로 묶어두는 걸 거부한 것으로 자주 인용된다. “내가 고도가 누군지 알았다면 작품에 썼을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은 학술 글에서도 ‘작가가 특정 해석(특히 신학적 동일시)을 경계했다’는 맥락에서 반복 언급된다. 
그러니 이 작품은 정답을 푸는 문제가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형식을 끝까지 견디는 독서에 가깝다.


고도를 기다리며


6) “두 막의 거울”이 만드는 의미 (번호 목록)

  1. “두 남자가 ‘고도’를 기다린다” — 줄거리의 뼈대는 극도로 단순하고, 그 단순함이 해석의 여지를 넓힌다. 

  2. “2막(두 번의 하루)” — 결말이 해결이 아니라 되풀이로 귀결되면서, 시간은 ‘진행’이 아니라 ‘순환’이 된다. 

  3. “초연(1953, 파리)”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형식 자체가 당시 관객에게 충격이었고, 이후 현대극의 기준점을 바꿨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4. “고도=정답 거부” — 작가가 단일한 의미로 고도를 고정시키는 해석을 밀어내며, 독자/관객에게 불편한 자유를 넘긴다. 

  5. “연출의 규율(베케트 유산 관리)” — 공연 해석이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실제 무대화는 유산 관리 규정과 충돌해 논쟁이 생기기도 한다. 


7) “말이 몸을 대신하는 희곡”

이 작품의 문장 호흡은 ‘짧게 끊기’와 ‘의미 없이 이어붙이기’를 번갈아 사용한다. 한 문장이 결심처럼 튀어나오고(“가자”), 바로 다음 순간 그 결심이 무효화된다(“움직이지 않는다”). 이 리듬이 반복되면서 독자는 깨닫는다. 여기서 대사는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정지 상태를 견디게 하는 박자다.

목소리(거리감)는 특이하게도 “심오한 철학의 단정”과 멀다. 오히려 말은 자주 흔들리고, 농담처럼 미끄러지고, 갑자기 유치해진다. 그런데 그 유치함이야말로 존재의 핵심을 찌른다. 삶이 무너지기 직전일수록 인간은 더 사소한 말로 자신을 붙든다—작품은 그 순간을 과장하지 않고 계속 되감는다.

구성 전환은 ‘사건의 전개’가 아니라 ‘반복의 누적’으로 이루어진다. 2막 구조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장치다. 첫 막에서 벌어진 일들이 두 번째 막에서 다시 오며, 관객은 “아, 또 이 자리구나”라고 느끼는 동시에 “그래도 조금 달라졌나?”를 찾게 된다. 그 미세한 차이가 기다림의 체온을 만든다. 

그리고 반복 장치의 정점은, 결국 침묵이다. 대사가 많이 오가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엔 말이 멈추거나 제자리에서 맴돈다. 이 침묵이야말로 “고도가 오지 않는 세계”의 물리 법칙처럼 작동한다.


8) “내일”이 너무 많은 시대

요즘의 기다림은 더 정교해졌다. 배송 조회, 합격 발표, 알고리즘 추천, 답장 ‘읽씹’의 초조함까지—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고도’를 만든다. 그 고도는 사람일 수도, 기회일 수도, 돈일 수도, 건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하지만 이 작품이 무서운 지점은, 기다림이 단지 외부 조건 때문만이 아니라 관계의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서로 없으면 버티기 힘들고, 그래서 떠나지 못한다. 우리는 관계에서도 비슷한 문장을 쓴다. “지금은 말 꺼낼 타이밍이 아니야.” “상대가 변하면.” “다음엔 달라지겠지.”

이때 『고도를 기다리며』가 주는 위로는 ‘희망’이 아니라 ‘정확한 관찰’에 가깝다. 기다림이 비참해지는 순간은, 기다림 자체가 목적이 될 때다. 반대로 기다림이 덜 비참해지는 순간은, 기다림을 하면서도 내 손이 움직일 때다. 이 작품은 그 차이를 설교하지 않고, 그저 같은 자리에 인물을 다시 세워둔다.

그래서 최근에도 새로운 무대가 계속 올라간다. 시대의 불안이 커질수록,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두 막”이 오히려 현실에 더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고도’는 정말 바깥에서 오는가, 아니면 스스로 만든 유예의 이름인가?

고도를 기다리며

9) 인사이트

  1. 기다림을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볼 수 있다.

  2. “말을 많이 하는 날”이 사실은 “움직이지 못한 날”일 수 있음을 점검해볼 만하다.

  3. 관계를 유지하는 대화가, 동시에 관계를 정지시키는 대화가 되지 않는지 살펴볼 수 있다.

  4. 반복되는 하루에서 “미세한 차이”를 찾아 기록해볼 만하다(반복을 깨는 단서가 거기 있을 때가 많다).

  5. 결심을 말로만 선언하는 습관을 줄이고, 아주 작은 행동 하나로 바꿔볼 수 있다.

  6. 정답이 없는 질문(“고도는 누구?”)을 ‘해결’ 대신 ‘동행’으로 다뤄볼 수 있다.

  7.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불안을 품은 채로도 가능한 루틴을 만들어볼 만하다.

  8. “내일”을 약속으로만 쓰지 말고, 오늘의 측정 가능한 단위로 쪼개볼 수 있다.


10) 눈에 들어온 문장들

  • “자, 갈까? / 그래, 가자. /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2막 말미로 널리 인용되는 대목) 

  • “The play consists of conversations… waiting for… the mysterious Godot.” (Britannica 요약) 

  • “Waiting for Godot made its world premiere on January 5, 1953…” (권리/공연사 소개) 

  • “If I knew who Godot was, I would have said so in the play.” (작가 발언으로 학술 글에서 재인용) 

  • “It remains a masterpiece… it could have been written today.” (Guardian 칼럼)

  • “From… Théâtre de Babylone in 1953… has become… a cornerstone of twentieth-century drama.” (출판사 소개) 


11) 저자 소개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극작가로,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사용했으며, 특히 전후 시기에 프랑스어로 중요한 작품들을 썼다는 점이 자주 강조된다. 
대표작으로는 『고도를 기다리며』(1952), 『엔드게임』 등 희곡과 산문들이 거론되며, 그의 작품은 흔히 실존적 주제·부조리·반복 구조로 논의된다. 
노벨상 공식 소개는 그가 “새로운 형식”으로 현대인의 처지를 드러낸 작가라는 취지로 평가한다. 
또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둘러싼 해석 논쟁(특히 고도의 정체에 대한 질문)에 대해, 작가가 단일한 해답 제시를 거부했다는 증언이 학술 문헌에서 반복 인용되며, 이는 베케트가 작품을 “정답의 장치”가 아니라 “경험의 장치”로 두려 했다는 인상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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