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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그림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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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이 나라를 망친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무너지는 공통 메커니즘

사회주의와 시장만능이 극단으로 굳을 때 무너지는 공통 메커니즘을 정보·인센티브·견제 관점에서 정리합니다.

“이념은 끝났다”는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

요즘은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과거처럼 거리의 구호가 선명하게 갈리고, 신문 지면이 좌우의 깃발로 갈라지던 풍경이 옅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국가는 어디 있나”라는 질문이 커지고,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시장은 누구를 위해 작동하나”라는 의심이 늘어나고,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여론을 흔드는 장면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정치가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정치가 더 깊숙이 일상으로 스며든 사회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이 글은 그 불편함에서 출발합니다. ‘사회주의는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많은 논의가 곧장 역사적 패배와 체제 붕괴의 기억으로 이동합니다. 물론 20세기의 여러 국가들이 남긴 실패는 무겁습니다. 

다만 ‘사회주의=실패’라는 등식만으로는, 왜 많은 사람이 여전히 평등과 안전망을 요구하는지, 왜 어떤 사회는 국가가 커질수록 억압이 강해지는지, 또 반대로 시장을 강화한다는 명분이 왜 공동체의 기반을 약화시키는지 설명이 부족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회주의가 왜 무너졌나”라는 질문을 한 발 더 확장해, 극단이 작동할 때 체제가 무너지는 공통 메커니즘을 함께 정리해 보려 합니다.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한 덩어리의 단일 개념이 아닙니다. 중앙이 모든 생산과 분배를 명령하는 형태가 있었고, 시장과 복지를 결합한 혼합모델도 발전해 왔습니다. 자유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법치, 권력 분산을 지향하는 전통이 있는가 하면,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신념이 정책 패키지로 굳어지며 사회적 약자를 방치하는 방식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핵심은 어느 한쪽을 선악으로 갈라 재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권력·정보·인센티브·견제 장치가 어떤 조건에서 왜곡되는지를 살펴보는 데 중심을 두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 번영”이 아니라 자유가 살아 있고, 기회가 공정하며,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공동체라는 점을 더 또렷하게 붙잡게 되실 것입니다.



1  정보·인센티브·견제의 붕괴가 시작될 때

사회주의가 “실패로 기억되는 순간”을 한 장면으로 압축하면, 사람들은 종종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선언한 뒤, 오히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를 떠올립니다. 그 기억이 과장되었든, 특정 시대의 상처가 덧씌워졌든 간에, 사회주의 체제가 흔들릴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리가 있습니다. 

저는 그 고리를 정보(무엇이 필요한가를 누가 아는가), 인센티브(누가 왜 열심히 해야 하는가), 견제(권력을 누가 어떻게 제어하는가)의 세 축으로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이 세 축은 경제 문제처럼 보이지만, 끝내는 정치와 행정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먼저 정보의 문제부터 보겠습니다. 

경제는 숫자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동네 빵집이 오늘 크림빵을 더 구울지, 소금빵을 더 구울지 결정할 때 필요한 정보는 “국가 통계”가 아니라 오늘 손님들의 표정, 경쟁 가게의 변화, 밀가루 가격, 계절과 날씨, 유행 같은 미세한 신호입니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그 신호를 요약해서 전달합니다. 가격이 오르면 “부족하니 더 만들자”는 메시지가 빠르게 퍼지고, 가격이 내리면 “남으니 줄이자”는 메시지가 확산됩니다. 반대로 중앙계획이 강해질수록, 생산과 배분을 설계하는 쪽은 방대한 정보를 위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정보가 늦게 도착하거나, 좋게 보고하려는 유인이 붙거나, 현장의 수요가 계속 바뀌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부족과 남음이 동시에 발생하는 기묘한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물건은 창고에 쌓이는데 정작 필요한 품목은 줄을 서야 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 지점이 체제의 “도덕성”과 별개로, 운영 방식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출발점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장면이 하나 더 붙습니다. 국가가 사회를 설계할 때는 보통 사회후생을 높이는 목적함수를 상정합니다. 예컨대 사람들의 효용 \(U_i\)를 모아 \(\max \sum_i U_i\) 같은 목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표함수를 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각 개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술로 생산이 가능한지, 어떤 대체재가 있는지 같은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확보하는 일입니다. 목표가 아무리 고상해도, 정보가 뒤틀리면 결과가 흔들립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주의의 논쟁을 “선의의 실패”로만 몰아가지 않고, 정보 처리의 방식이 어떤 조건에서 무너지는가를 먼저 짚는 편이 더 학문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인센티브의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의 실패를 말할 때 “사람들이 게을러진다”는 도덕 평가로 빠르게 넘어가곤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보상과, 잘못한 의사결정에 돌아가는 비용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가입니다. 이 연결이 끊기면 근면성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가 됩니다. 헝가리 경제학자 코르나이(János Kornai)가 제기한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은 그 연결이 끊기는 전형적 장면을 설명합니다. 조직이 적자를 내도 “어차피 국가가 메워준다”는 기대가 굳어지면, 경영자는 효율이나 혁신보다 상부기관과의 관계, 정치적 보호막을 더 중시하게 됩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성과가 삶의 질로 이어진다는 감각이 약해지면, 위험을 감수하며 개선하려는 동기가 줄어듭니다. 코르나이는 이 개념을 사회주의 경제의 부족 현상과 함께 분석했고, 이후 전환경제나 시장경제 내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관측된다는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이 구조를 아주 간단한 식으로 적어보면, 조직의 이윤 \(\pi = R - C\)가 음수여도 보조금 \(S\)로 메운다면, 실질적인 생존 조건은 \(\pi + S \ge 0\)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핵심은 보조금 자체가 악이라는 주장에 있지 않습니다. 위기 때의 구제, 공공서비스 유지, 산업전환 지원처럼 보조금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능을 합니다. 문제는 보조가 조건과 감시, 종료 규칙을 잃고 “상시 구조”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때부터 예산은 딱딱한 규율이 아니라 말랑한 기대가 되고, 말랑해진 기대는 조직 전체의 행동을 바꿉니다.

soft budget

마지막은 견제의 문제입니다. 

중앙계획이 강화될수록 행정권은 커지고, 그 커진 행정권을 붙드는 정치 권력도 함께 비대해지기 쉽습니다. 여기서 사회주의의 실패는 경제 운영의 실패를 넘어 자기수정 능력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정책이 틀렸다는 신호가 나와도 공개 토론이 막히고, 통계가 포장되고, 비판 언론이 위축되면, 체제는 방향을 바꾸기보다 문제를 숨기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경제의 비효율보다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이 ‘고치면 나아진다’는 믿음을 잃는 순간, 불만은 제도 밖으로 튀어나오고, 그 불만을 누르는 방식으로 국가가 반응하면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최근 민주주의 연구 흐름에서도, 선거 유무만으로 민주주의를 판단하기 어렵고 견제 장치와 시민자유의 약화가 장기적으로 체제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경고가 반복됩니다. 

정리해 보면, 사회주의가 실패로 기억되는 길목에는 대체로 세 가지 신호가 먼저 켜집니다. 첫째, 현장 정보가 위로 전달되는 속도가 늦어지고 왜곡이 커집니다. 둘째, 책임과 보상의 연결이 약해져 ‘관계’가 ‘성과’를 이깁니다. 셋째, 비판과 검증이 막히며 정책이 틀려도 고칠 통로가 좁아집니다. 이 세 신호가 동시에 나타나면, 평등과 연대라는 목표를 말하는 목소리까지 불신의 그림자에 갇히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실패했나?”라는 질문은 사실 “사회가 목표를 실현하는 운영 장치가 무너졌나?”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2  ‘극단적 시장만능’이 흔드는 구조 — 불평등, 약한 국가, 정치적 급진화

사회주의가 흔들릴 때 등장하는 경고등을 정보·인센티브·견제로 정리했듯이, 시장과 자유를 강조하는 정책 패키지도 극단으로 굳어지면 비슷한 경고등이 다른 얼굴로 켜지곤 합니다. “시장이 효율적이니 국가가 물러나야 한다”는 구호가 문제라기보다, 그 구호가 공공의 기반을 떠받치는 제도 설계까지 함께 약화시키는 순간부터 균열이 커집니다. 이 균열은 경제 통계로만 끝나지 않고, 결국 정치적 정서와 사회적 신뢰를 흔들며 다시 이데올로기 전쟁의 연료가 됩니다.

먼저 불평등의 누적을 보겠습니다. 

시장은 경쟁을 통해 혁신을 만들고 자원을 배분합니다. 그 경쟁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출발선이 지나치게 기울지 않아야 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규제완화·민영화·자본 이동의 급격한 자유화·긴축재정이 하나의 처방처럼 묶여 적용될 때, 사회 구성원들이 체감하는 세계는 “자유로운 경쟁”이라기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의 개인화”로 변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IMF의 문제제기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일부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성장에 도움이 되기보다 불평등을 키우고, 그 불평등이 다시 성장의 지속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논지를 분명하게 적고 있습니다. 

극단적 시장, 정책

불평등이 커질 때 나타나는 파장은 생각보다 넓습니다. 소득 격차는 소비 여력과 교육 기회의 격차로 번지고, 교육 기회의 격차는 노동시장 진입과 승진의 격차로 이어지며, 그 격차는 다시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감각을 만듭니다. 여기서 핵심은 ‘가난’ 그 자체보다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공정성의 믿음이 약해지면 사회는 같은 정책을 두고도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반응합니다. 어떤 이에게 복지는 “세금으로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사다리를 복원하는 일”로 읽히고, 다른 이에게 복지는 “내 몫을 빼앗기는 일”로 읽힙니다. 이 감정의 분열이 깊어질수록 정치 언어는 “정책 설계”가 아니라 “적대의 구호”로 기울기 쉽습니다.

정부와 시장


다음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약한 국가’가 되는 위험입니다. 

국가의 역할을 줄이는 논의는 언제나 한 방향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규제를 정리하고 민간의 창의를 살리는 일은 필요합니다. 다만 국가가 줄어들 때 함께 줄어드는 것이 규제의 양이 아니라 국가역량(능력)이라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약한 국가는 시장을 비켜서기보다 시장에 휘둘립니다. 독점과 담합을 막지 못하고, 플랫폼의 규칙을 공공이 아니라 기업이 사실상 정하며, 노동의 안전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커져도 조정하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자유가 확대된 듯 보이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었다”기보다 “혼자 책임져야 할 위험이 늘었다”는 감각이 강해집니다.

이 지점에서 인센티브가 다시 왜곡됩니다. 사회주의에서 연성예산제약이 “어차피 국가가 구제한다”는 기대를 만들었다면, 극단적 시장만능에서는 “어차피 개인이 책임진다”는 구조가 고착됩니다. 그 결과 기업은 단기 성과를 위해 위험을 외주화하기 쉬워지고, 노동자는 안정성을 잃은 채로 경쟁에 내몰리며, 중산층은 하향 이동의 두려움 속에서 방어적으로 변합니다. 방어적 정서가 커질수록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자리를 얻고, 정치에는 “조정과 타협”보다 “응징과 처벌”의 메시지가 유리해집니다.

마지막은 견제의 약화가 민주주의의 체력 자체를 깎는 과정입니다. 

경제가 불안정해지고 불평등이 누적되면, 시민들은 불만을 해결해 줄 강한 리더십을 요구하기 쉽습니다. 이때 제도적 견제 장치가 약하면, 권력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 아래 언론·사법·시민자유를 압박할 유인을 갖습니다. 최근 민주주의 보고서들은 선거가 남아 있어도 민주주의가 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V-Dem은 세계 평균 민주주의 수준이 장기적으로 후퇴해 과거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는 취지의 요약을 내놓았고, 권위주의화가 넓게 확산된 흐름을 지적합니다. 

디지털 공간도 같은 흐름을 보여줍니다. Freedom House의 Freedom on the Net 2024는 온라인 인권 환경이 다년간 악화되는 추세를 언급하며, 여러 나라에서 검열과 통제가 강화되는 양상을 정리합니다. 
경제적 불만이 누적된 사회에서 온라인 공간이 통제될수록, 사람들은 사실을 더 정확히 알기보다 분노를 더 빠르게 공유하게 되고, 숙의의 회로가 약해지며, 정치적 양극화는 더 쉽게 증폭됩니다. 그 결과 “이데올로기가 끝났다”는 말과 달리, 사회는 이데올로기적 전쟁을 더 자주 경험합니다. 다만 전쟁의 형태가 ‘계급’만이 아니라 정체성, 지역, 세대, 젠더, 플랫폼 문화 같은 여러 축으로 갈라져 나타날 뿐입니다.


3  자유도 평등도 놓치지 않으려면 — ‘혼합모델’은 기술이고, 견제는 안전장치입니다

앞선 이야기한것처럼, 사회주의든 시장만능이든 극단으로 굳는 순간 공통된 붕괴 축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보가 왜곡되고, 인센티브가 뒤틀리고, 견제가 약해집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실패했나”라는 질문은 사실상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운영할 것인가”라는 설계의 질문으로 바꿀수 있습니다.  여기서 혼합모델(시장 + 복지 + 규율 + 민주적 견제)은 타협의 산물이기보다, 현실의 충돌을 관리하는 기술에 가깝습니다.

1) 혼합모델의 핵심 원리: 시장은 ‘혁신’, 국가는 ‘위험 분산’, 민주주의는 ‘수정 능력’

혼합모델을 이해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관점은 역할 분담입니다.

  • 시장의 강점: 혁신, 경쟁, 선택의 다양성

  • 국가의 강점: 위험을 함께 나누는 제도(사회보험·복지), 공정한 규칙 집행(독점 규제·노동 안전), 장기투자(교육·보건·인프라)

  • 민주주의의 강점: 정책이 틀렸을 때 되돌릴 수 있는 자기수정 장치(언론·사법·선거·시민사회)

최근 민주주의 지표 연구는 “선거가 남아 있어도 시민자유와 견제 장치가 약해지면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반복합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자유가 줄어드는 장기 추세가 보고됩니다. 
결국 혼합모델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정치·행정의 체력 관리와 연결됩니다.

2)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해지는 설계 포인트: “분배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혼합모델을 논할 때 “복지는 마음이 따뜻한 정책”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독자는 “그래서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나”를 묻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려면, 분배가 작동하는 구조를 딱 한 줄로 정리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
Y_d = Y - T + B
\]

  • \(Y\): 시장에서 벌어들인 소득

  • \(T\): 세금과 사회보험료

  • \(B\): 현금·현물 복지, 교육·보건 같은 공공서비스의 혜택(가계 관점에선 ‘지원’)

여기서 핵심은 (T)를 올리느냐 내리느냐가 아니라, (B)가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어 “기회”를 복원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OECD는 조세·이전(transfer) 정책이 불평등을 얼마나 줄였는지, 장기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계량적으로 정리해 왔습니다. 

3) 혼합모델이 잘 굴러가기 위한 3가지 장치

혼합모델은 “중간”이라서 안정적인 게 아니라, 장치를 촘촘히 깔아야 유지됩니다.

(1) 하드한 예산 규율: ‘연성예산제약’을 막는 종료 규칙
사회주의 경제 분석에서 유명한 코르나이의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은 “망해도 살려준다”는 기대가 제도화될 때 생기는 비효율을 설명합니다. 
혼합모델에서도 구제금융, 산업지원, 공기업 지원은 늘 논쟁거리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건 “지원 여부”보다 지원의 조건·감시·종료 규칙입니다. 구조조정이 가능한가, 성과 지표가 공개되는가, 정치적 줄서기가 개입할 틈이 줄어드는가가 관건입니다.

(2) 공정 경쟁의 방파제: 독점·플랫폼 권력에 대한 규칙
시장 기능은 경쟁이 있을 때 빛납니다. 경쟁이 약해지고 독점이 굳으면 가격 신호가 왜곡되고, 정보가 특정 주체에 집중되며, 정치 로비가 강해집니다. 그 순간 “작은 정부”는 자유를 키우기보다 강한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혼합모델에서 규제의 목적은 시장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고, 시장이 경쟁하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3) 사회적 신뢰를 살리는 복지: ‘현금 지급’보다 ‘사다리 복원’ 중심
IMF는 특정 ‘신자유주의’ 정책이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불평등을 키워 장기 확장을 해칠 수 있다는 문제제기를 공개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논점이 주는 시사점은 분명합니다. 불평등은 소득의 차이에서 멈추지 않고, 공정성의 감각을 갉아먹어 정치의 언어를 과격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복지는 “누군가를 돕는 마음”을 넘어,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위험을 분산해 민주주의의 기반(신뢰·규칙 준수)을 유지하는 장치로 설명하는 편이 설득력이 큽니다.

4) “사회주의는 실패했나”의 답은 하나가 아니라,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설계로 귀결됩니다

베트남의 도이머이 이후 변화는 ‘사회주의 지향 시장경제’라는 표현 아래에서 시장 기제와 제도 개혁을 결합해 성장과 빈곤 감소를 만들어온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세계은행도 1986년 도이머이 이후 개혁이 경제 변화를 이끌었다는 요지를 소개합니다. 
물론 베트남 역시 제도적 병목, 행정 개혁, 대외환경 위험 같은 숙제를 안고 있고 최근 행정 개편 논쟁도 계속됩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명료합니다. 현실의 성패는 ‘사회주의냐 아니냐’보다, 정보·인센티브·견제를 어떤 조합으로 설계했는가에 좌우됩니다. 그리고 그 조합이 극단으로 굳는 순간, 실패는 형태를 바꿔 다시 돌아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극단의 승리’가 아니라 ‘자기수정 능력의 유지’입니다

“사회주의는 실패했을까?”라는 질문을 붙잡고 오래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질문이 뒤집힙니다.

 “사회주의가 실패했나”보다 더 무서운 질문, “우리는 실패를 고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나”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로 기억하는 지점은, 평등을 말하던 언어가 어느 날 권력의 언어로 바뀌고, 공동체를 말하던 약속이 감시와 통제의 현실로 굳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제의 비효율도 컸지만, 더 치명적인 손상은 정책이 틀렸을 때 되돌릴 통로가 닫히는 순간에 생겼습니다. 공개 토론이 막히고, 통계가 포장되고, 책임이 흐려지면 사회는 스스로를 수리할 능력을 잃습니다. 그때부터 체제는 ‘정당함’을 설득하는 대신 ‘두려움’으로 유지되려 하고, 사람들은 제도 안에서 희망을 찾기보다 제도 밖에서 분노를 찾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장을 절대화하는 극단도 비슷한 방향으로 사회를 몰아붙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선택이 곧 책임”이라는 말이 아름답게 들리는 시기가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회가 열려 있을 때입니다. 하지만 불평등이 누적되고 중산층의 안전감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같은 문장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힙니다. “선택은 네 몫이고 실패도 네 몫”이라는 냉혹한 선언처럼 들립니다. 그때부터 사회는 성취를 찬양하는 대신 생존을 걱정합니다. 생존의 공포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타협을 미덕으로 보기보다 배신으로 느끼기 쉽고, 복지를 연대의 장치로 보기보다 적대의 신호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IMF가 특정 정책 패키지가 불평등을 키워 장기 성장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한 이유도 그 연결고리 위에 놓여 있습니다. 

정부

극단이 나라를 망친다는 말은 어느 한 이념을 공격하기 위한 문장이 아닙니다. 

극단이란, 복잡한 현실을 하나의 정답으로 눌러버리는 태도입니다. 시장이 전부라고 말하거나, 국가가 전부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위험은 시작됩니다.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듯, 국가도 모든 문제를 대신 책임질 수 없습니다. 두 영역이 만나는 지점에서 늘 필요한 것은 ‘균형’이라는 추상적 미덕이 아니라, 훨씬 구체적인 기술입니다. 정보가 왜곡되지 않게 하는 공개성과 경쟁, 인센티브가 뒤틀리지 않게 하는 책임과 규율, 견제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그 기술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주의는 실패했다”라는 선언보다, 다음의 문장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수정 능력을 잃은 체제는 결국 실패한다.” 

그 체제가 계획경제였는지, 시장만능이었는지, 표면의 이름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부르는 내부 메커니즘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예산 규율이 말랑해져 책임이 사라지거나, 독점이 굳어 경쟁이 사라지거나, 언론·사법·시민사회가 위축되어 견제가 사라지면, 사회는 방향을 고칠 수 없게 됩니다. V-Dem은 권위주의화가 확산되는 흐름을 통해 민주주의의 체력 저하를 경고해 왔고, Freedom House는 온라인 자유가 장기적으로 악화되는 추세를 보고하며 표현의 자유 환경이 흔들리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국민들이 자신의 재산과 소득을 보호받고,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는 사회.” 

이 바람은 좌우의 깃발과 무관하게 매우 인간적입니다. 다만 그 바람이 현실이 되려면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합니다. 

첫째,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기회’로 연결되도록 교육·보건·노동시장·공정경쟁이 받쳐줘야 합니다. 

둘째, 실패가 삶 전체의 추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보험과 안전망이 작동해야 합니다. 

이 둘이 함께 서 있을 때, 사람들은 경쟁을 공포가 아니라 도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사회는 갈등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갈등을 관리할 체력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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