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권 거래제(Emissions Trading System, ETS)는 흔히 ‘총량을 먼저 정하고(cap), 거래로 비용을 낮추는(trade)’ 방식으로 설명됩니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총량(캡)을 정한 뒤, 그 범위 안에서 기업(또는 사업장)별로 배출권(allowance)을 배분하고, 기업은 부족하면 사서 맞추고, 남으면 팔아 수익을 얻는 구조로 운영됩니다.
대한민국은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국가 단위 ETS를 운영해 왔고, 제도 설계는 계획기간별 할당계획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조정되어 왔습니다.
ETS의 핵심 구조: “기업이 ‘가장 싼 감축’부터 선택하도록 만드는 장치”
ETS가 시장기반 정책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기업들이 감축을 ‘의무’로만 느끼게 만드는 대신 가격 신호를 통해 “어떤 선택이 더 합리적인가”를 계산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기업 A: 설비 개선으로 1톤 감축 비용이 2만 원
기업 B: 같은 1톤 감축 비용이 6만 원
-
배출권 가격이 4만 원이라면
A는 감축(2만) → 배출권 매도(4만)가 유리
B는 배출권 매수(4만) → 감축(6만)이 유리
경제학적으로는 기업이 한계감축비용(MAC)이 배출권 가격과 같아지는 지점에서 행동을 멈추는 경향이 생깁니다.
$$MAC_i(q) \approx P_{allowance}$$
이 원리가 작동하면, 사회 전체로는 “같은 감축량”을 만들더라도 총 비용이 가장 낮아지는 조합이 형성됩니다.
ETS 작동 방식 7단계로 정리
정부가 캡(총량)을 설정합니다.
계획기간의 규칙에 따라 배출권을 무상/유상(경매 등)으로 할당합니다.
기업은 생산·운영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기업은 측정·보고·검증(MRV) 체계에 따라 배출량을 확정합니다.
배출량이 할당량보다 크면 시장(거래소 등)에서 배출권을 구매합니다.
배출량이 할당량보다 작으면 남는 배출권을 매도할 수 있습니다.
이행기간 종료 시점에 실제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제출(정산)합니다.
대한민국 ETS는 계획기간을 두고 운영되며, 제도 문서상 1단계(2015~2017), 2단계(2018~2020), 3단계(2021~2025)로 설계된 바 있습니다. 초기(1단계)에는 2015년 1월 1일 시행, 2015~2017(1단계) 대상 525개 기업 할당 등 제도 뼈대가 확정되며 시장이 열렸습니다.
“정부가 배출권 가격을 조정한다”는 표현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ETS에서 가격은 기본적으로 시장(수요·공급)에서 형성됩니다. 다만 정부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가격의 급등락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경매 물량 조정, 할당 물량 구조 조정(무상/유상 비중 변화)
시장안정화 장치(예: 준비분, 안정화 메커니즘)
보유 한도, 거래 규칙, 이월(banking)·차입(borrowing) 규칙 등 설계 변경
한국 ETS 역시 제도 설계 문서에서 가격 급등·급락 등 특정 조건에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장치 (준비분, 안정화 수단)를 두고 운영해 왔고, 최근에는 4차 계획기간과 연계해 K-MSR(한국형 시장안정화제도) 도입·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ETS(K-ETS) 계획기간 정리 표
아래 표는 “계획기간” 중심으로 제도의 큰 흐름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세부 업종/대상 범위는 계획기간별 할당계획과 고시에서 조정).
| 구분 | 계획기간 | 제도 운영 포인트(핵심 변화) |
|---|---|---|
| 1차 | 2015~2017 | 국가 단위 ETS 시행 시작(2015.1.1), 대규모 배출원 중심 적용, 무상할당 비중이 매우 큼 |
| 2차 | 2018~2020 | 무상할당 비중 축소(경매 도입·확대 방향), 제도 정교화 |
| 3차 | 2021~2025 | 계획기간 기반 운영 지속, 무상할당 비중 추가 조정(경매 비중 확대 방향) |
| 4차 | 2026~2030 | 4차 계획기간 할당계획 확정·운영 방향 제시, 유상할당(경매) 확대 및 K-MSR 등 시장안정화 장치 강화 |
참고로, 초기 설계 문서에서는 제도가 3단계(2015~2017 / 2018~2020 / 2021~2025)로 운영되며, 525개 대규모 배출원이 국가 배출량의 약 2/3 수준을 차지한다는 범위 설명도 제시된 바 있습니다.
ETS의 장점: “감축 목표 달성과 비용 최소화를 동시에 노립니다”
1) 총량(캡) 기반이라 목표 달성 경로가 비교적 명확합니다
탄소세가 “가격을 정하는 정책”이라면, ETS는 “물량(총량)을 정하는 정책”에 가깝습니다.
목표를 물량으로 고정해 두면 제도 설계만 탄탄할 경우 감축 성과를 관리하기 수월해집니다.
2) 기업은 ‘가장 저렴한 감축’부터 선택하게 됩니다
앞서 본 MAC–가격 신호 덕분에, 산업 전체로는 감축 비용이 과도하게 커지는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3) 혁신 유인
배출권 가격이 유의미하게 형성되면, 에너지 효율·공정 개선·연료 전환·저탄소 기술 투자에 대한
내부 수익성 계산이 빨라집니다.
ETS의 한계와 오해: “제도는 강력하지만, 설계가 느슨하면 효과도 느슨해집니다”
1) 배출권 가격 변동성
경기 변동, 연료 가격, 규제 변화에 따라 가격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안정화 장치(K-MSR 등)의 설계가 중요해집니다.
2) 무상할당이 과하면 감축 유인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무상할당은 탄소누출(해외 이전) 우려가 큰 업종을 보호하는 의미가 있지만,
공급이 넉넉하면 “사야 할 이유”가 줄어들어 감축 압력이 낮아집니다.
초기 설계에서도 단계가 갈수록 경매 비중을 높이는 방향을 명시했습니다.
3) ‘거래가 가능하니 감축을 안 한다’는 주장에 대한 정리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감축 유인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핵심은
캡이 충분히 타이트한가, 그리고 가격이 감축 결정을 자극할 만큼 의미 있는가입니다.
캡이 엄격하고 이행 규정이 강하면, 거래는 감축을 회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감축 비용을 낮추는 통로로 기능합니다.
4) 범위(커버리지) 문제
ETS가 모든 배출원을 100% 포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확대, 효율 규제, 건물·수송 정책, 탄소세/부담금 등과
정책 패키지로 결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ETS가 “2050 탄소중립”에서 더 중요해지는 이유
탄소중립은 선언만으로 달성되지 않습니다. “연도별 감축 궤적”을 실제 투자·생산 의사결정으로 바꿔야 합니다. ETS는 그 연결을 돕는 대표적 도구입니다.
기업 관점: 배출권 가격이 중장기 투자 의사결정의 기준선이 될 수 있음
정부 관점: 총량 관리 + 시장가격 신호를 통해 감축비용을 통제할 수 있음
사회 관점: 동일 감축 목표를 더 낮은 비용으로 달성할 가능성
그리고 4차 계획기간(2026~2030)과 함께 유상할당 확대, 시장안정화 장치(K-MSR) 강화 같은 운영 방향이 제시되면서, 제도의 실효성을 끌어올리려는 설계 의지도 확인됩니다.
“ETS는 만능이 아니라, ‘설계가 성패를 결정하는 도구’입니다”
ETS는 온실가스 감축을 ‘시장’의 언어로 번역해 기업의 행동을 바꾸는 정책입니다. 다만 성과는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습니다. 캡의 엄격성, 무상·유상할당 구조, 시장안정화 장치, MRV의 신뢰성이 함께 맞물릴 때, ETS는 감축을 “가능한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경영 변수”로 만들어 줍니다.

댓글 쓰기